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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5/19

힌두교 인드라 제석천

인드라(Indra) - 제석천(帝釋天)


카오락 2박3일

17일 금요일이 석가탄신일로 쉬는 날이었다. 금,토,일요일 3일을 쉬는 참 좋은 날이었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쉬는날이 아니었었다.
비는 내리고 있고, 17일 빨간날에 다시 회사로 출근해야 되었다. 팀 준비할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아침부터 팀준비하게 되었고, 자금이 부족하여 송금도 하지 못해서 금요일날 송금을 하고 카오락으로 향하게 되었다.
오후 4시경에 센트랄 페스티벌에 가서 송금을 하고, 혜정이는 집에 대려다 준후 카오락으로 출발하였다, 오후 5시경?? 센트랄 페스티벌 4사거리는 지하도를 만든다고 공사중이고, 엄청나게 길이막히는 상황, 또한 퇴근시간이랑 겹치게 되어서 더했던것 같다.

여전히 길은 계속 막혔다. 보트라군 앞 도로에서부터 공항3거리까지는 계속 쭈욱 막혔다.
푸켓을 벗어나는 데만 1시간이 족히 거린듯하다. 사라신 다리를 지난후, 카오락까지는 불빛도 전혀없고, 해가 저문후 부터는 제대로 속도를 낼 수가 없었다. 처음 가보는 길이기도 하였고 말이다.

더 브리자 (The Briza) 호텔에 도착한후 조금쉬다가 마사지 받으러 나갔다. 이틀동안 총 3번 마사지를 받았는데, 푸켓보다 대체로 못하는 것 같다. 왼쪽다리는 지금도 뭉처있다.

새벽 2시쯤 되었을 것 같다. 사온 맥주 48캔중에 절반가량을 먹고, 바닷가를 나가보자고 경엽이와 이야기했다. 이 친굳 좀 취했는지 수영복 갈아 입고 바다로 가보자고 했다.
빨리 옷 갈아입고, 수영복 바지만 입고 한손에 맥주를 들고 바닷가로 갔다. 새벽2시라서 호텔에 걸어다니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비는 주룩주룩 내리고 있었다. 바닷바람이 불어와 살짝 한기를 느꼈다.
바닷가 바로 옆에 지어진 호텔이라 해변까지는 그리 멀지 않았다.
해변으로 갈수록 무언가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철썩철썩 ... 완전히 해변으로 나오니 친구와 대화하기도 힘들정도로 커다란 파도소리...
처음에는 둘다 바닷가에 들어가서 몸이나 좀 담그고 오자고 했지만, 도착하니 들어갈 엄두도 나지 않는다 엄청난 파도에 이게 자연의 힘인가 싶으기도 했다.
그냥 파도가 심하게 치는 것 뿐인데 이정도면, 이곳에 스나미가 왔을 때에는 어땟을 지 상상도 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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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나 태국은 건기철에 와야 좋다. 우기철에 한적하고 사람없고, 좋기는 하지만...
바다는 사람을 잡아먹을 듯이 크게 일렁이고, 날씨는 우울하며,
햇볕을 잘못봐 수영장에서 수영하면 정말 춥다...(내가 추위를 잘타기는 하지만..)

2013/05/06

해적

해적(Pirate)
그리스어의 '페리아' 가 어원이며, 그뜻은 '바다에서 운을 시험하다'

Piracy

시저
 시저는 해적들이 자신의 몸값으로 당시 엄청난 액수인 20탈렌트를 요구하자,
"내 몸값은 그보다 높으니 50탈렌트를 달라고 하라"
고 말하였다고 하며, 또한
"그 대신 풀려난다면 너희들을 모두 잡아 죽이겠다"
말하였고, 그는 풀려나서 바로 토벌단을 조직하였고, 자신을 잡았던 해적들을 모조리 잡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다고 한다.


서양사에서 제일 대표적인 해적들은 바이킹이다. 지금은 복지국가의 전형으로 알려진 스웨덴과 덴마크 등지에서 내려온 이들은 9세기 내내 유럽 전역을 공포에 떨게 했다. 이들 중 ‘북쪽에서 내려온 사람들’이라는 뜻의 노르만 족은 1066년 영국을 침공, 영국의 지배자로 군림해왔다. 또 역시 바이킹의 일파인 루스 족은 러시아로 쳐들어가 러시아 민족의 조상이 됐다. ‘러시아’라는 말 자체가 ‘루스’에서 나온 것이다. 한 때 세계를 호령하던 대영 제국과 소련 제국의 조상이 따지고 보면 과거 이웃 동네에 살던 해적이었던 셈이다.

따지고 보면 미국도 해적과 깊은 인연이 있다. 신대륙 탐험가로 이름을 날린 영국의 프랜시스 드레이크나 롤리 경은 모두 해적 출신이다. 이들은 아메리카의 마야 아즈테크 제국과 잉카 제국을 정복한 후 이들의 금은보화를 약탈해 유럽으로 싣고 가던 스페인 배를 습격하는 것이 전문이었다. 이들이 신대륙에 관심을 기울인 것도 약탈선의 병참기지로서 유용했기 때문이다. 당시 영국 여왕이던 엘리자베스는 이를 국가사업으로 후원하고 이들이 빼앗은 금품의 일부를 챙겼다. 영국 국부의 상당 부분은 훔친 물건을 다시 훔쳐 이룬 것이다. 

근대에 들어 이름을 날린 것은 북아프리카 연안의 바바리 해적들이다. 이들은 1500에서 1800년 사이 100만 명이 넘는 유럽인들을 노예로 팔아넘긴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신생국 미국은 1800년까지 이들에게 한 때 정부 예산의 20%를 몸값과 조공으로 바치기도 했으나 견디다 못한 나머지 1805년 최초로 해외 원정단을 파견, 이들을 토벌하고 만다. 

바솔로뮤 로버츠
검은 준남작 바솔로뮤 로버츠(bartholomew "barti du" roberts)
1682년 5월 17일 ~ 1722년 2월 10일)는 18세기에 활동했던 웨일즈 출신의 해적이다.
11개월동안 활동하면서 400척이 넘는 배를 약탈하였으며 그가 약탈한 재물의 가치를 요즘 가치로 환산하면, 3200만 달러에 달하였다고 한다. 1682년에 웨일즈에서 탄생했으며 노예상인으로 활동하다가 해적인 하웰 데이비스에게 붇잡혀 해적이 되기를 강요당했다. 하웰 데이비스가 죽은뒤 해적 선장으로 추대되었으며 11개월 동안 해적으로 활약하였다. 1722년 2월 5일에 영국 해군 군함 제비호의 공격을 받고 사망하였다.

아마란테라는 곳에 위치한 집이다. 이런집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 출처 https://www.ivotavar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