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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11/09

오사카 에피소드 2

1편에 이어 오사카 에피소드 2편들어갑니다...



원래대로라면 여기 체크인해서 일정을 진행하여야 했지만,
저녁 10시이후로는 체크인이 되지 않아서 못가고

일본남자애랑 난바역에 내리게 되었습니다...

이미 새벽1시가 다되어 가는 시각이고 처음가보는 곳이라 어디였는지 기억은 잘나지 않습니다만

난바역버스정류장에서 뒤쪽으로 나와 쪽길로 들어갔습니다.
*** 이라는 아치모양의 간판이 걸려있는 골목이었고, 안쪽으로 쭈욱들어가니 식당이 드문드문 있더군요.

그중에 분위기 괜찮아보이고 사람좀있는 곳으로 들어갔더랬죠.

일단은 맥주 한잔씩먹고 이것저것 묵었습니다.
술들어갑니다... 맥주에서 소주로,,, 사케로...그중에
쿠료오 머시기가 있었는데 ,흑룡 머시기인데 제법맛나더군요...
이래저래 먹으면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어디서 왔느냐는 물음에 일본남자(일남)
일남:방콕에서 놀다가 왔어요.
나: 혼자?
일남:네 혼자서 놀다왔어요

알고 보니 일남은 방콕-쿠알루프룸프-오사카 나는 푸켓-쿠알루프룸프-오사카

즉, 오사카 올때 같은 비행기 타고 왔었다.
좋은 인연이네 친하게 지내야겠다고 생각했지만,,,

2시간정도 실컷먹고, 노래방도 갔습니다... 남자둘이 ...

이래저래 각자 1만엔씩, 전음식값, 그놈은노래방

내고 그놈집에 가서 자는데
누워있는데 자꾸 뭔가 와따갔다 합니다...
그놈 손이네요...

옷후딱갈아입고 나왔습니다. 노래방에서 놀고 집에오니 새벽6시였는데 아침9시정도에 나와서 코마에 갔습니다..

코마에 도착하니 팡짱이 맞이해주었고 ...시체처럼 1층라운지에서 퍼질러 기다렸습니다.
3시간동안.....

그날 기다린 시간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에 대하여
팡짱과 친해지고 나서는 계속 핀잔을 주었더랬고

나: 아..내가 그때말이야 비행기 타고 공항대기하고 일본오는대만 18시간 걸리고 밤새 술먹고 주저리주저리...힘들었는데.
팡짱 : ㅠ,.ㅠ 너무 편하게 앉아있어서 신경안썼어요..

사실 그랬다...

그날 이후 코마에서 1주일 있는데, 오는 사람마다 똑같은 첫마디...


스텝이지죠??????

또는... 외쿡아이들이 어디어디 갈려는데 어떻게 가야할까요? 라는 질문이나..

한국분들 만나서 통성명하고 하면 ,

스텝인줄 알았어요...
라고 다들 말씀하시더라...



경주박물관 소식

<출처 경주시 책자>

국립경주박물관(신라문화의 진수를 한자리에~)

신라 천년의 역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국립경주박물관은 성덕대왕신종을 비롯한 많은 수의 유물을 소장하고 있으며, 3,000여 점의 유물이 상설 전시되고 있다. 유물의 성격에 따라 고고관,미술관,안압지관,특별전시관으로 나뉘어 진시되고 있다.

*관람시간 :3월~10월 : 09:00 ~ 18:00 (토요일,일요일,공휴일은 1시간 연장)
     11월~2월 : 09:00 ~ 17:00
*휴관 : 매주 월요일
*문의 : 054-772-5193

경주박물관, 윤효전 초상화 특별전
기사입력 | 2013-11-07


국립경주박물관(관장 이영훈)은 특별전 '조선시대의 경주'에 경주 부윤을 역임한 윤효전(1563~1619)을 전하는 보물 제1502호 초상화를 6일부터 10일까지 추가로 특별 전시한다.

조선 후기의 성리학자이자 문신이었던 기천(沂川) 윤효전은 서경덕(1489~1546)의 문하인 민순(1519~1591)에게 글을 배웠고, 1605년(선조38)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에 들어섰다.

그는 충청도관찰사를 거쳐 1613년(광해군5), 선조의 맏아들 임해군의 역모사건(이른바 계축화옥)을 진압한 공으로 익사공신 2등에 책록됐다.

그러나 대사헌의 자리에 있던 1617년, 광해군의 계모인 인목대비(仁穆大妃)의 유폐를 반대하다가 정치적으로 어려움을 겪기도 했다.

역대 경주부윤의 명단인 '경주선생안(慶州先生案)'에 따르면, 윤효전은 50대 중반이던 1617년 4월 24일에 도임해 1619년 2월 5일 별세하기까지 약 2년 동안 경주부윤을 지냈다.

전 윤효전의 초상화는 바닥에 화려한 채전(彩氈)을 깐 뒤, 단령과 사모를 착용하고 공수(拱手) 자세로 교의(交椅)에 앉아 있는 17세기 전반의 전형적인 공신 초상 형식을 따랐다.

다만 가슴의 공작흉배와 허리에 찬 서대는 문관 1품의 복식에 해당하므로 그가 익사공신으로 책록됐던 1613년 때의 품계인 정2품 자헌대부와는 일치하지 않는다.

그 이유로는 아들 윤휴가 신원 상소를 올려 작고한 아버지를 정1품 대광보국숭록대부로 영의정에 추증한 뒤, 그 기념으로 이 초상을 다시 제작했기 때문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윤효전은 이번 '조선시대의 경주' 특별전에 출품된 당대의 석학 한강(寒岡) 정구(鄭求1543~1620)의 문집인 봉산욕행록(蓬山浴行錄)에도 등장한다.

한강 정구는 1617년 8월 30일부터 9월 2일까지 2박 3일간 경주를 들렀다.
이상욱기자 swlee@kyongbuk.co.kr

 ▲ 금장대 `사리공양석상`
경주박물관에서 새로운 물건이 들어왔다.
경주 서천가의 석장동 금장대에서 1980년에 발견되 사리공양석상 1점. 그리고 2011년 금장대에서 새로나온 석상 2점이랑 같이해서 3점 새로 공개한다고 한다. 시간나면가봐야할듯!!!




불국사

불국사 삼층석탑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은 경주 불국사에 있는, 남북국 시대 신라의 삼층석탑이다. 원래 이름은 석가여래상주설법탑이며, 흔히 줄여서 석가탑이라고 한다. 아사달과 아사녀의 전설에서 따와 무영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불국사 대웅전 앞뜰에 다보탑과 나란히 서 있으며, 대한민국의 국보 제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이탑은 일반적으로 751년 경덕왕 10년 무렵 김대성이 불국사를 중수할 무렵에 세워졌다고 추정하고 있지만, 742년에 완성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또한 이탑은 고려초에 일어난 지진 때문에 1024년과 1038년에 중수되었다.
높이 10.4m 신라의 전형적인 석탑 양식을 대표하는 가장 우수한 예이며, 2층 기단위에 3층의 탑신과 상륜부가 있는데 각 부분의 체감비율이 적당하며 간결하다.


1966년 10월 탑을 보수하면서 내부 공간에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국보 126호)을 포함한 각종 유물이 발견되었다.
<출처 위키피디아>


종교적의미
무영탑(아사녀가 영지에서 기다렸으나 죽을 때까지 탑의 모양이 비치지 않아서 붙인 이름)이라는 의미로 잘 알려져 있는 석가탑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사리를 모신 탑이다. 석가탑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인도의 바위산인 영축산에서 설법하실 때의 모습을 포현한 것. 탑 밑에는 바위를 그대로 두어 산이란 의미를 표현하고 있다. 기단부를 이루고 있는 기단석은 그렝이질하여 조성하였고, 탑 주위에 자리하고 있는 연꽃자리의 좌대는 팔방금강좌라고 하며, 이자리는 부처님의 제자가 앉았던 자리로서 활짝핀 연꽃의 둥근 방석으로 표현된것을 보면 우리 조상의 슬기가 대단함을 알 수 있다.


2013년 9월 석가탑은 보수를 위한 해체작업이 있었다. 탑신부 해체과정에서 2층 옥개석을 들어내고 사리공에서 수습한 사리장엄구는 1966년 수리당시 재봉안했지만, 그 안에 있는 진신사리는 1,300년 전 석가탑 건립당시 봉안된 성보다.
불국사는 진신사리를 박물관에 보관하지 않고 석가탑에 재봉안하기 전까지 일반에 공개하기로 최근결정했다. 이에 따라 석가탑 수리가 진행되는 내년 2014년 3월까지 불국사 무설전에서 관람이 가능하다.
1966년 발견당시 사리장엄구

아마란테라는 곳에 위치한 집이다. 이런집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 출처 https://www.ivotavar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