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고

2010/01/27

3 손숙오가 양두사를 땅에 묻고 울다


손숙오가 어렸을 때 밖에서 놀다가 양두사를 보고 죽여서 땅에 묻고는 집에 돌아와 우는 것이었다. 그의 어머니가 우는 이유를 묻자 숙오는 이렇게 대답했다. "제가 듣기로 머리가 둘 달린 뱀을 본 사람은 죽게 된다면서요. 방금 제가 그런 뱀을 보았습니다. 어머니를 두고 죽게 될까 두려워 우는 것입니다." 이에 어머니가 다시 물었다. "그래, 그 뱀은 지금 어디에 있는냐?" 그러자 숙오가 설명했다. "다른 사람이 또 그것을 보게 될까 걱정스러워 죽여서 땅에 묻어 버렸습니다." 어머니는 이렇게 달래 주었다. "내 듣기로 남몰래 덕을 베푼 자는 하늘이 복으로 보답해 준다고 하더구나. 너는 죽지 않을 것이다."
 그가 장성하여 초나라의 영윤이 되었는데 아직 정치를 펴기도 전에 백성이 그의 어짊을 믿고 따랐다.

2 공신씨가 음탕한 아내를 내쫓다


공자가 마을에 살고 있을 때 효도를 돈독히 행하였다. 그가 궐당에 살게 되자 궐당의 자제들이 사냥을 하거나 고기잡이를 하게 되면 그 친척에게 더 많이 나누어 주었으니, 이는 바로 공자의 효도가 그들을 교화시켰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72인의 제자들이 먼 곳에서부터 모여들어 그의 덕에 복종하였던 것이다.
 노나라의 심유씨 라는 자는 아침에 양에게 물을 잔뜩 먹여 마치 살진 것처럼 속임수를 써서 남에게 파는 짓을 하고 있었다. 또 공신씨라는 자는 그 아내가 심히 음탕하였으며, 신궤씨라는 자는 사치스럽고 교만하기 이를 데 없었고, 게다가 노나라 시장에서 소와 말을 파는데 미리 싼값에 사들여 폭리를 취하는데 뛰어났다.
 그러나 공자가 장차 노나라의 사구가 되리라는 것을 알자 심유씨는 감히 아침에 양에게 물을 먹여 파는 짓을 하지 못하였으며, 공신씨는 그 음탕한 아내를 내쫓아 버렸고, 신궤씨는 국경을 넘어 다른 곳으로 이사감으로써 노나라의 우마 시장에는 미리 사 두었다가 폭리를 취하는 폐단이 더 이상 나타나지 않게 되었다. 이는 바로 공자가 정당하게 법을 시행하여 그들을 대하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이윽고 공자가 사구가 되자 계손씨 맹손씨를 보내어 후성과 비성의 반란을 진압하도록 하였다. 그러자 제齊나라에서는 지난날 노나라로부터 빼앗았던 땅을 돌려주었으니, 이는 공자가 정당한 정치를 쌓았기 때문에 얻어진 결과이다. 그래서 "자신의 몸을 바르게 하면 명령을 내리지 않아도 실행된다"라고 한 것이다.
제齊- 춘추 시대의 제후국으로 지금의 산동성 일대이며 수도는

1. 아버지 고수가 아들 순을 죽이려 하다


 옛날 순舜 임금은 친히 밭을 갈아 농사를 짓고 그릇을 굽고 고기를 잡는 힘든 일을 하면서도 몸소 효도와 우애를 실천하였다. 아버지 고수는 완악하기 이를 데 없었고, 어머니는 못된 말만 골라서 하는 인물이었으며, 동생 상은 오만하기 그지없었으니 식구들 모두가 이처럼 지혜가 낮아 어찌해 볼 도리가 없는 인물들이었다.
 그렇지만 순은 효도를 극진히 하여 아버지 고수를 봉양하였다. 고수와 상이 준정도름(浚井塗廩)의 일을 꾸며 순을 살해하려 하였지만 순의 효도는 그럴수록 더욱 돈독해졌다. 매번 밭에 홀로 나와 일을 할 때면 울음을 터뜨리며 나이 오십이 넘었으면서도 마치 어린아이가 그 어버이를 그리워하듯 하였으니 지극한 효도라 이를 만하였다.
 그런 까닭으로 순이 역산에서 농사를 짓자 그 덕에 감화된 역산의 농부들이 밭두둑을 서로 양보하였고, 하수가에서 그릇을 구울 때에는 도공들이 성심을 다하여 그릇을 기울거나 찌그러지게 굽는 일이 없었다. 또 뇌택에서 고기잡이를 할 때는 고기잡이 하는 사람들이 서로 양보하여 욕심을 내지 않았으므로 모두 그 몫을 고르게 나누어 가졌다.
 이런 순이 천자가 되자 천하가 교화되었고 만이의 이민족이 몰려와 복종하였다. 북으로는 거수까지 뻗쳤고 남으로는 교지까지 위무하여 그의 의를 사모하지 않는 자가 없었으며, 인과 봉이 교외에 나타났다. 그러므로 공자가 "효성과 우애의 지극함은 신명에까지 통하고 그 빛은 사방에 뻗치도다"라고 하였으니, 바로 순 임금을 두고 한말이다.

신서(新序)


신서는 중국 서한西漢 말기의 유향劉向(기원전 77~6)이 편찬한 역사고사집이다. 유향은 이 책을 통해 한왕조에 간언과 교훈으로 삼게 하려고 했다. 한서 권36 유향전에서 "전기와 행사를 채집하여 신서와 설원 총50편을 지어올렸다. 자주 상소하여 득실을 말하고 본받을 일과 경계할 일을 진술했었는데, 글을 수십차례 올려 임금께서 살펴보시는 것을 돕고 빠진 부분을 보충하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임금께서 비록 이를 모두 실행하지는 못했으나, 그 말을 가상하다고 받아들이며 감탄하셨다." 고 하여, 실제로 저술로 간언할 말을 대신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신서라는 제목은 '새롭게 순서를 정해 내용을 분류한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제목 자체의 의미보다는 오히려 편집 순서에 치중하여 풍간의 재료로 삼은 주제에 의미를 두었던 것이다. 이 책의 완성 시기는 대체로 한성제 양삭 원년(기원전 24년) 2월을 계묘일로 보고 있다.

도리이 류조의 시베리아,북만주, 사할린 조사일기 -인류학자와 일본의 식민지 통치-


도리이 류조 지음. 최석영 역주
1장
   1. 비밀에 가려져 있었던 동부 시베리아
   2. 동부시베리아에서 다섯 가지 나의 임무
   3. 동경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4. 블라디보스톡 체재 중 나의 임무
   5. 동양학원(동양학원)
   6. 블라디보스톡박물관
   7. 얀코프스키 반도의 패총
   8. 블라디보스톡에서 이르쿠츠크로 향하여
2장
   1. 마음이 침착해지는 이르쿠츠크
   2. 이르쿠츠크박물관
   3. 이르쿠츠크에서 치타로
   4. 치타와 브랴트족
   5. 제다에서 하일라얼로
   6. 하일라얼과 극동 중심점
   7. 소론 탐험
   8. 바라카 몽골인 조사
3장
   1. 오로촌의 탐험
   2. 치치하얼 부근 탐험
4장
   1. 치치하얼에서 하얼빈으로
   2. 다시 하얼빈에서 제다로
   3. 제다박물관
   4. 오논강 탐험
5장
   1. 통구스 탐험
   2. 헤이룽강 하항 하나
6장
   1. 브시와 그 박물관
   2. 아이훈 탐험
   3. 헤이룽강 하항 둘
7장
   1. 하바로프스크에서
   2. 고리도 사람에 관한 탐험
8장
   1. 헤이롱강 하류 셋
   2. 니콜라예프스크시에서
   3. 치루 및 길라크 탐험
   4. 헤이룽강 하류 연안 조사
9장
   1. 다시 니콜라예프스크시에서
10장
   1. 헤이룽강을 다시 거슬러 올라가다
11장
   1. 다시 하바로프스크시에서
12장
   1. 하바로프스크시에서 블라디보스톡으로
13장
   1. 니콜리스크시(니콜리스크 우수리)탐험
14장
   1. 블라디보스톡에서 동경으로
15장
   1. 사할린주 탐험
16장
   1. 대륙 사할린주 탐험
17장
   1. 다시 북사할린으로
18장
   1. 길랴크와 오로츠꼬 사람의 거주지
19장
   1. 츠이무강을 거슬러 올라가
20장
   1. 북사할린의 토성
부록
   1. 북사할린 및 헤이룽강 하류의 민족에 대해
   2. 마미야 린죠와 사할린 및 동달지방과의 관계에 대해

포스트 식민주의 이론(post-colonial)


최근 포스트 식민주의 이론이 정교화되면서 아일랜드 역사 연구에도 새로운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Edward Said)의 [오린엔탈리즘 Orientalism](1978)은 일반적으로 포스트 식민주의 연구의 새로운 시작으로 간주되는데, 사이드 이후 식민주의 연구는 정치적 종속과 경제적 착취라는 익숙한 틀에서 빗어나 담론 분석에 집중해왔다. 담론 분석이 중요해진 이유는 식민주의적 관계란 처음에는 총과 면직물에 의해 이루어지지만 정착단계에서는 주로 텍스트에 의해 구성된다는 이식 때문이다. 식민주의 담론 연구는 서구 문명의 토대가 되는 담론과 유럽 지식의 문화적 헤게모니를 비판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중요한 것은 식민지의 정치적 종속이 아니라 '식민 세력이 타자의 몸과 공간에 스스로를 새겨 넣는 순간'이다. 같은 맥락에서 단순히 식민지의 정치적 독립이 아니라 식민주의와 '식민주의의 역사 길들이기의 역사'가 그것이 생산해낸 범주와 개념들의 지배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졌는지가 중요하다. 즉 지배자와 종속민, 백인과 비백인, 문명과 야만, 문화적 정체성, 부족과 민족 등에 대한 개념 정립과 담론이 포스트 식민 사회에서 어느 정도 해체되었는지가 핵샘인 것이다.
 식민주의 담론 연구는 특히 근대 이래 서양이 자기와 타자를 바라보고 이론화한 방식을 의무시한다. 데카르트 이래 서양 철학은 개인의 자아를 중시하고 그외 모든 것을 타자화하는 경향을 보임으로써 유럽과 비유럽 세계의 이원론에 대한 근거를 마련했다. 그 결과 유럽 역사는 인류 전체로 확산되어 보편화했고, 유럽의 역사와 철하기 총체화의 기준이 되었다. 즉 말없는 지시체로서의 유럽이 동,서양을 막론하고 모든 역사적 이해의 기본이 된 것이다. 특히 유럽인들은 18세기 이래 유럽만이 문명임을 주장했다. 그들은 인도인이나 아프리카인들이 스스로 통치할 만큼 아직 문명화되지 않았다고 단정하면서 유럽이 문명화의 사명을 짊어져야 함을 정당화했다. "영국의 죄악이 무엇이든 간에 영국은 역사의 무의식적 도구"라며 마르크스가 영국의 인도 지배를 인정해준 것이 아마 이러한 입장의 대표적 예일 것이다.
-출처 슬픈 아일랜드 박지향 지음-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문학사상 오스카 와일드만큼 단일한 정의를 거부하는 인물도 아마 없을 것이다. 와일드는 '뼛속까지 아일랜드 사람'이면서 잉글랜드 사회의 최고 계층의 후원과 존경을 받았고, 신교도 집안에 태어났으면서 죽을 때까지 가톨릭 교회에 매료되었으며, 동성애자이면서 결혼해서 자식들을 두었다. 그는 어떤 아일랜드 출신 문인보다도 더 성공적으로 잉글랜드 상류 사회에 침투했고, 동성애 사건으로 몰락할 때까지 상류 사회가 요구하는 역할을 완벽하게 수행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잉글랜드 상류 사회에 온전히 빠져들 수 없는 아일랜드성을 자신의 몸속에 지니고 있었다.
와일드의 가족은 지적으로는 뛰었지만 이상한 가족이었다. 그의 부모는 아들 못지 않는 유명 인사들로 두 사람 다 평범한 인물이 아니었다. 와일드 가는 더블린의 사업가, 의사, 국교회 목사 등을 배출한 확실한 중간 계급이었다. 아버지 윌리엄 로버트 와일드(William Robert Wilde)는 1815년 지방 의사의 아들로 태어나 더블린에서 의학 공부를 한 후 비엔나와 런던에서 훈련을 받았다. 그는 아일랜드에서는 물론 영국에서도 눈과 귀에 대해 그처럼 많이 아는 사람은 드물 것이라는 평을 듣는 저명한 의사였을 뿐만 아니라, 아일랜드의 고대 역사 및 민담 연구에 일가견을 가진 민속학자였다. 하지만 그는 더블린에서 가장 더러운 사람이라는 별명을 가지고 있기도 했다. 예이츠는 "윌리엄 경의 손톱은 왜 그렇게 검을까? 자기 몸을 긁었기 때문이지" 등의 농담이 자기 집안에서 오갔다고 기억했다. 윌리엄 와일드는 또한 사생활이 매우 복잡한 낭봉꾼으로 와일드가 열 살일 때 한 여성 환자가 제소한 친자 확인 소송이 시작되었다. 와일드의 아들 역시 비슷한 나이에 아버지의 동성애 사건을 겪게 된다. 와일드와 그의 형제들은 적어도 네명의 배다른 형제들과 함께 여름 휴가를 보내기도 했는데, 와일드의 극들이 자주 태생의 사고를 다루는 것도 이해할 만하다.
와일드의 어머니 제인 프란체스카 엘지(Jane Francesca Elgee)도 유서 깊은 <아일랜드국교회>집안 출신으로 그녀의 아버지는 변호사 였다. 신교도이면서 보수적인 그녀의 집안과 가톨릭 민족주의자들 사이에는 어떠한 사회적 교감도 없었다. 그러나 일단 민족주의 정신을 취하게 되자 아일랜드의 노래와 고통을 다룬 모든 문학이 "찌릿찌릿한 감흥을 가지고" 그녀를 덮쳤다. 그녀는 곧 '스페란짜(Speranza)'라는 필명으로 시를 쓰는 성미 급한 애국자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아일랜드의 서정적 전통을 찬양한 그녀의 글 가운데 다음 문장이 돋보인다. "강한 국민들은 싸우고, 억압받는 국민들은 노래를 부른다. 그렇기 때문에 아일랜드인들은 수세기 동안 무기와 전함이 아닌 서정적인 노래의 열정적인 폭풍우로 이방인들의 지배에 맞서는 전쟁을 해왔다." 1840년대의 대 기근을 소재로 한 그녀의 시는 굶어죽은 아일랜드인들의 뼈가 압제자들에 대항해서 봉기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런 범상하지 않은 부모에게서 태어난 자식 역시 비범할 수 밖에 없었음은 당연하다.
-출처 슬픈 아일랜드 박지향 지음-

아마란테라는 곳에 위치한 집이다. 이런집에 살면 얼마나 좋을까 출처 https://www.ivotavares.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