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테오 리치 연표
1552년 10월 6일 이탈리아 교황령 마체라타에서 태어남
1561년 마체라타의 에수회 학교에 입학함.
1568년 법률을 공부하기 위해 로마로 감.
1571년 8월 15일 예수회의 수련수사로서 로마의 성안드레아 신학원에 입학함.
1572년-1573년 피렌체의 예수회 대학에서 수학함.
1577년 여름 포르투갈 코임브라에 감.포르투갈어를 배움.
1578년 3월 포르투갈 국와 세바스티앙을 알현함.
3월 24일 성 루이지호를 타고 리스본을 떠남.
9월 13일 고아에 도착. 신학을 배우고, 라팅어와 그리스어를 가르침.
1580년 코친에 거주. 7월말 사제로 서품을 받음.
1581년 고아로 돌아옴.
1582년 4월 26일 고아를 떠남.
6월 말라카에 도착.
8월 7일 마카오에 도착.
1583년 9월 10일 미켈레 루제리와 중국의 자오칭에 거처를 마련함.
1584년 10월 리치가 제작한 세계지도의 해적판이 자오칭에서 인쇄됨.
1589년 8월 3일 중국 관리의 미움을 사 자오칭에서 추방됨.
8월 26일 사오저우에 거처를 마련함.
1591년 12월 사서의 번역 초고를 집필하기 시작함.
1592년 7월 사오저우의 사제관이 공격을 당하고, 리치는 다리를 다침.
1594년 11월 예수회원의 복장을 승복에서 유학자의 옷으로 바꿈.
1595년 4월 18일 사오저우를 떠나 난징으로 감.
5월 중순 배가 난파되어 동행한 바라디스가 익사함.
6월 28일 난창에 거처를 마련함.
11월 교우론을 씀.
1596년 봄 기법 초고를 씀.
1579년 8월 중국 전교단의 책임자로 임명됨.
1598년 9월 7일
~11월 5일 처음으로 베이징에 가지만, 거주허가를 받지못함.
1599년 2월 6일 난징에 거처를 마련함.
1600년 11월 환관 마탕에게 십자고상을 압수당함.
1601년 1월 24일 다시 베이징에 들어감.
2월 중국 황제를 위해 서금곡의팔장을 지음.
5월 28일 베이징 거주허가를 받음.
1602년 8월 세계지도 개정판을 출판함.
1603년 가을-겨울 천주실의 를 출판함.
1604년 8월 중순 다국어 대조 성서인 플랑탱 성서가 베이징에 도착함.
1606년 1월 지필묵 제작자인 청다웨에게 그림 4장과 해설문을 넘겨줌.
1607년 5월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론의 전반부 6권을 번역하여 출판함.
1608년 1월~2월 가인십편 을 출판함.
가을~겨울 중국 그리스도쿄 전교사 를 집필하기 시작함.
1609년 9월 8일 베이징에서 최초로 성모회가 결성됨.
1610년 5월 11일 베이징에서 사망함.
1596년, 마테오 리치는 중국인에게 기억의 궁전 짓는 법을 가르쳤다. 궁전의 규모는 기억해 두고 싶다고 생각하는 대상의 양에 의해 결정된다. 모든 것을 다 기억하고 싶다면 크고 작은 다양한 건물이 수백 개나 달린 대궁전을 지을 수도 있을 것이다. 리치는 비록 단번에 웅장한 규모의 건축물을 지을 수는 없다는 단서를 붙이긴 했지만, "건물의 수는 많을수록 좋다"고 말했다. 사람에 따라서는 아담한 궁전을 지을 수도 있고, 사원이나 관청, 공공 숙소나 상인회의소 같은 조금 수수한 건물을 지을 수도 있다. 좀더 작은 규모에서 시작하고 싶다면 연회실이나 별채, 작업실 따위를 세울 수도 있다. 만약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를 원한다면 별채의 한쪽 구석이나 사원의 제단을 이용해도 좋고, 옷장이나 소파 같은 흔한 기구라도 무방하다.
리치는 이 기억술의 요점을 설명할 때 이런 궁전이나 별채나 소파는 머릿속에 간직해 두어야 할 상상의 산물이지, 말 그대로 '실제'물질로 지은 견고한 물체는 아니라고 말한다. 리치는 주로 다음 세가지 가운데 하나를, 이런 기억을 설치할 장소로 삼으라고 제안한다. 첫째, 현실에서 끌어낸 장소. 곧 한번이라도 가 본적이 있는 건물이나 직접 눈으로 본 적이 있어서 자신의 기억 속에서 되살려 낼 수 있는 물체 등에서 취한 장소이다. 둘째, 완전한 가공의 장소. 이것은 적당한 형태와 크기로 떠올린 상상력의 산물이다. 셋째, 현실과 가공이 반반씩 섞인 장소. 간략히 말해서 평소 잘 아는 건물의 뒷벽에 상상의 뒷문을 달아서 새 공간으로 가는 지름길을 낼 수도 있고, 건물 중앙에 상상의 계단을 내서 새로 만든 위층으로 올라갈 수도 있는 것이다.
왜 머릿속에 이런 건축물을 세우는 것일까? 그것은 인간 지식의 총체를 형성하고 있는 무수한 관념 하나하나에 보관할 장소를 설정하기 위해서 이다. 리치의 기록에 따르면 우리가 기억하고 싶은 대상 각각에 대해 이미지를 주어야한다고 한다.
' 먼 엤날, 서양에서 시모니더라는 귀족 시인이 친척과 친구와 함께 궁전에서 개최된 주연에 초대받았다. 그곳은 수많은 사람들로 북적거렸는데, 시모니데스가 잠시 자리를 비우고 바깥으로 나간 사이 갑자기 불어닥친 강풍으로 큰홀이 무너져 내렸다. 흥청대던 사람들은 모두 깔려 죽었고, 그들의 시체는 절단나고 서로 뒤섞여 가족들조차 알아볼 수 없었다. 그런데 시모니데스는 그의 친척과 친구들이 앉아 있던 순서를 정확히 생각해 내서, 한사람 한사람의 위치를 지적했기 때문에 어떤 시체가 누구인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사건으로 기억술이 탄생했고 후세에 전해지게 된것이다. '